1967 태봉산
조선 인조 2년(1624) 이 괄(李 括)의 난 때 임금과 왕비가 피난 중에 왕자를 얻었으나 어린 왕자는 잔병이 많아 걱정이
끊이지 않았다. 근심 끝에 왕비가 백일 불공을 드리자 꿈에 도사가 나타나 「왕자의 태를 묻은 곳은 땅 기운이 불순하여
태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니 광주 고을 복판에 있는 여의주(如意珠) 모양의 둥글고 작은 산에 태를 옮기고 금을 태워
함께 묻으라 」 하였다. 도사의 말대로 왕자의 태를 이곳에 이장하였더니 병이 나았다고 하는데 태봉(胎峰) 이라는
이름은 여기서 비롯 된것이라 한다.
그 후 1929년 7월 광주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촌로(村老)들은 태봉산에 남몰래 쓴 무덤 때문에 가뭄이 들었을
것이라는 미신에 현혹되어 산 꼭대기를 파헤쳐 태를 묻은 백자 항아리와 태실(胎室), 그리고 1돈 5푼의 금박(金箔) 등
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「태를 묻었다」 는 뜻의 태봉이 사실로 확인되었다.
풍수지리상 광주의 지형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여의주를 물고 하늘에 오르는 화룡승천(化龍昇天)의 형국인데, 태봉산은
바로 여의주에 해당되는 산이였다고 한다.
북구 신안동에 있었던 태봉산은 높이 30M에 약 3,000평 정도의 둥글납작한 산이었는데 1967년 이 산을 허물고
경양지를 매립하였다.(현 광주역 부근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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