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991년 낙암정(광산구 임곡동 낙암 기정룡에 의해 중건된 후 몇 차례 중수)
낙암정은 조선 중기 문헌공 고봉 기대승(高峰 奇大升·1527~1572)이 태생지(송현동)로 성리학을 강론한 곳으로 대사성을 지내다 1569년(선조2) 병으로 낙향해 44세 되던 다음해 5월에 짓고, 그 아래 동편에 수간{數間}의 우사(寓舍)를 지어 동료(東寮)라고 이름하고 찾아오는 학자들을 거처케 했다고 전한다.
스승 퇴계 이황 선생이 말한 "가난할수록 더욱 즐길 수 있어야 한다."는 빈당익가락(貧當益可樂)에서 그 뜻을 취했다. 이황이 기문을 짓고 편액을 써 주었으나 7개월 후에 죽고만다. 기대승은 이곳에서 은거하며 유거잡영(幽居雜詠) 15수를 남긴다.
그러나 현재의 낙암정(樂菴亭)은 고마산중(叩馬山中)에 있었던 옛날의 낙암정이 아니라 기정룡의 낙암(樂庵) 기정룡(奇挺龍;1670~1738) 후손들이 그의 유덕(遺德)을 추모(追慕)하기 위해 옛날의 정명(亭名)을 빌려 이곳에 다시 이건(移建)한 별도의 정자이다. 낙암 기정룡은 자는 현룡 호는 낙암으로 숙종 때 은사로 저서에 낙암유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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