2006년 화담사
광주기념물 제18호.
조선 전기의 문신 정희와 그 아들, 손자 3대 및 정오도·민제장 등 5분을 모신 사당.
고려가 멸망하자 두문동(杜門洞)에 은거하여 충절을 지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정희(鄭熙)와 그의 아들 정초(鄭招), 손자 정수충(鄭守忠) 3대와 정오도(鄭吾道)·민제장(閔濟章) 등 5위(位)를 배향하는 사당 화담사는 고려 말-조선 초기 두문동에 은거하면서, 고려 왕실을 향한 정절을 지킨 묵은공 휘 희(默隱公 鄭熙) 를 중앙에 모시고, 좌우에 그의 아들 문경공 휘 초(文景公 鄭招) · 손자 문절공 휘 수충(文節公 鄭守忠)과 약포공 휘 오도(藥圃公 鄭吾道), 그리고 여흥 민씨인 충장공 휘 제장(忠壯公 閔濟章)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.
화담사가 자리잡은 곳은 예로부터 향기롭고 온화한 꽃들이 많다고 하여(군분, 郡芬) 화담(花潭)이라 불렀다. 하동 정 씨가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약 500여 년 전에 보성군수를 역임한 정화(鄭和)가 살기 시작하면서였고, 그 후 계속하여 후손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. 이 마을을 화정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화담사의 '화'와 송정의 '정'를 합쳐서 이름을 지은 까닭이다. 문절공 휘 수충의 맏아들 보성공 휘 화(寶成公 鄭和)는 자신의 선친이자, 사경과 예법에 뛰어나고 청렴결백한 문절공 휘 수충의 영정을 모신 영당을 이곳에 세웠는데, 이것이 화담사의 시작이다.
고유번호 | 2006-cul021-0043.jpg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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촬영일자 | 2006 | 복제방법 | jpg |
촬영자 | 광주광역시청 | 제공자 | 광주광역시청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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